교민자녀 한국어 공부도 ‘삼위일체’?
백은지
“얘들아, 안녕! 와~ 누가 이렇게 선생님보다 아침 일찍 왔을까? 누가 왔나 보자. 이렇게 종이 치기 전에 온 친구들은 정말 부지런한 거야. 학기말 종업식에서 정시 등교상도 받게 돼. 그리고 선생님이 없어도 아침에 오면 이렇게 여기 책상 위에 숙제해온 거 가져다 놓아라. 우리 토끼반 친구들은 숙제를 참 잘 해오는구나. 누가 이렇게 숙제를 잘 해왔는지 볼까? 김민우, 프랜시스 세리…어….이름을 안 쓴 사람도 있네…”
매주 토요일 아침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세요.”라는 교장선생님의 당부를 되새기며 교실에 들어서서 아이들에게 하는 인사말이다. 아직 잠이 덜 깬 아이들의 하품하는 모습이 왜 이리 귀엽고 고마운지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2015년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호주한국학교에 처음 문을 두드렸고 첫 전화 면접에서 “실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이 일을 오래, 더 잘 할 수 있다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한 해 한 해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여러 가지 교육방법과 경험들을 쌓아가며 문득 떠오르는 한 가지 궁금증이 있다. ‘아이들이 왜 한글을 배워야 하는지 과연 알고 있을까?’ 대다수의 아이들이 국적은 호주인으로, 부모의 양쪽 혹은 한쪽의 바람으로 자의 반 타의 반 한글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부모의 모국을 알기 위해 모국어인 한글을 배우는 것이 그 문화를 알고, 나아가 소통을 가능케 한다는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국에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자주 볼 수 없는 슬픈 현실에 대화마저 힘들어 세대 간에 단절이 되는 상황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호주에 살면서 이렇게 중요한 한글을 어떻게 배우고 익혀야 하는가라는 목표를 위해 고심한 끝에 찾아낸 세 가지가 바로 한국어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부모님의 절실함, 수업에 임하는 아이의 긍정적인 자세, 거기에 한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열성을 다하는 선생님의 노력이다. 이 세가지가 만났을 때 한국어 교육이 가능하고 가장 효과적이라는 답을 얻게 됐다. 다시 말해 부모, 아이, 선생님 모두 왜 한글공부를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동기부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호주한국학교에서는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각 반마다 한글 해득단계에 맞춰 워크시트를 만들고, 더 나아가 아이들의 잠을 쫓는데 아주 유용한 글자노래는 수업 중 없어서는 안 될 사막의 오아시스라고나 할까. 한 글자 한 글자 두 번째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큰 소리로 정확한 발음을 소리 내어 부르고, 고학년 학급에서는 소리, 모양, 움직임 표현과 그 어려운 한자, 관용표현까지 노래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익히도록 제작된 체계적이고 실용적인 글자노래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 노랫가락의 경쾌함 속에 교민자녀와 우리말에 대한 호주한국학교의 열정과 25년 연륜의 무게가 느껴진다.
한글교육과 더불어 텀 1, 2에 10주간 걸쳐 진행되는 한국문화체험행사인 ‘즐거운 한국문화 교실’은 역할극을 통해 기본적인 언어예절을 배우고 또 다양한 한국문화 종목을 선정, 틈틈이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할 수 있다. 워크시트를 나눠줄 때마다, 잘했다고 스티커를 붙여줄 때 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요.”라고 마치 귀여운 머슴을 연상케 하던(^^) 한 아이가 방과 후 “안녕 가세요.”라고 종지부를 찍고 갈 때가 있었는데, 행사 후에는 깜박하고 문을 나서다가 다시 돌아와 두 손을 모으고 “선생님, 인사하러 다시 왔어요. 안녕히 계세요.”라고 허리 굽혀 인사하는 모습을보며 느끼는 뿌듯함은 부모님의 흐뭇한 미소로 충분하다. 장구를 치며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를 판소리 버전으로 부르는 나를 따라 ‘얼~쑤!’ 하고 제법 그럴듯한 추임새로 답하던 아이들, 신문지를 말아 만든 투호를 항아리에 던지다 옆으로 떨어졌을 때 땅이 꺼지듯 아쉬워하던 표정, 수건놀이를 할 때 술래에게 잡힐까 우사인 볼트처럼 초스피드로 쏜살같이 달리던 모습, 천을 사다 특수기술(?)로 배배 꼬아 만든 줄로 줄다리기를 하다 졌을 때 속상해 하며 끝내 울음을 터뜨린 아이가 어찌나 귀엽던지. 행사 후 소감문을 써보는 시간에 “그냥 다 재미있었어요.” “오늘 또 하면 안돼요?”라며 소리치던 아이들을 보면서 ‘내년에는 또 뭘 해볼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이 외에도, 수업 중 옆 친구가 잘했을 때 손이 터져라 박수치는 아이들, 자기 물건을 빌려주는 아이들에게 포인트를 주면서 서로를 칭찬하고 나눠 쓰는 습관을 길러 주고,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미안해”, ”고마워”를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레 할 수 있도록 인사습관을 길러 주는 것 또한 수업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수업 끝나기 5분 전 아이들을 기다리는 학부모님께 마음속으로 양해를 구하고 그날 배운 글자, 낱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 한 글자 읽기가 더디기만 하던 아이가 어느새 주저하지 않고 대답할 때 느끼는 놀라움은 나에게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검색하고 연구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된다. 또한 아침 일찍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 주시고, 귀한 시간 쪼개어 숙제를 확인하고 서명해 주시는 부모님의 지도와 참여는 그 노고에 하나라도 더 가르쳐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하는 큰 힘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거기에 필요시 수업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붙들고 쉬는 시간까지 직접 보충수업을 하시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시고, 또 아이들의 한글교육을 위한 필요한 교자재 구입에 과감히 투자하시는 교장선생님의 백업시스템도 빼놓을 수 없다.
매일 보는 컴퓨터, 스마트폰 자판에도 컴퓨터와 가장 잘 어울리는 글자 한글이 있다. 소리 나는 대로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다 받아 적을 수 있는 위대한 문자가 바로 한글이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인해 준말, 비속어, 맞춤법 파괴, 무분별한 사용 등으로 신조어가 범람하며 한글의 아름다움을 해치고 있다. 함부로 줄여서 말을 만든다거나 외래어 같은 말을 만들어 쓴다면 세대 간의 소통을 해야 하는 문자 고유의 기능조차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걱정을 하게 한다. 자국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면 그 언어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가장 단순하고 과학적인 문자 한글. 이번 주말에는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되새기며 아이들과 한글 관련 동영상을 한 편 본 후, 한국어를 왜 배워야 하는지 오손도손 얘기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