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자녀의 한국어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5년 전의 선택

윤기원 학부모 (호주한국학교)

“외국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라고 누군가에게 들은 기억이 나네요. 호주에 젊을 때 이민 와서 맨 처음에는 달라진 환경을 익히고 일하느라 바빠서 그런 생각이 그리 머릿속에 맴돌지 않았지만, 애들이 태어나고 한국에 데리고 갔을 때, 엄청 좋아하시고 애들과 가능한 한 많이 같이 있고 싶어 하시는 부모님들을 보면서, 멀리 떨어져 있던 그 생각이 좀 더 가깝게 다가오게 된 것을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아내가 한국인이 아닌 상황으로 인해, 제가 주도적으로 한글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약간의 망설임도 있었지만, 이 게으른 아빠를 이끈 힘은 나중에 애들과 불편한 영어로 대화하는 끔찍한 생활을 평생 하느니, 지금 조금 힘들어도 나중에 좀 편하게 한국어로 대화하는 삶을 누리자는 희망이었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애들이 영어를 못하시는 애들 할머니 할아버지와 대화를 좀 더 자연스럽게 하고, 한국에 여행 가서도 편하게 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좀 더 이타적인 목적으로 포장되었었지만요.

제가 애들을 한국학교에 보내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중국 학교를 보내는 것을 추천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호주에서 구직 시 중국어 가능자는 선호 대상이지만 한국어 가능자는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은 저의 경험으로도 알고 있었지만, 다행히 아내의 폭넒은 아량과 지원 덕분에 애들을 한국학교로 보내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우선 첫째부터 보내기 시작한 한국학교, 이 학교를 고르기까지 많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여러 분들의 경험담도 듣고 직접 데리고 가서 환경도 보고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한국학교라지만 “학교”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그리 생각하지 않고 와서 “정식 학교” 같은 시스템으로 가르치는 환경에 만족해서 보내기 시작한 첫 학기, 이 시기는 저와 첫째에게는 조금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첫째에게는 낯선 환경, 힘든 클래스 난이도 등이, 저에게는 알람 없이 잘 수 있는 토요일 오전의 행복을 빼앗긴 시련, 자식을 위해 토요일 9시부터 1시까지를 어쩔 수 없이 학교에 헌납해야 하는 억울함 등…. 이런 생각들이 저를 고민스럽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대다수의 아빠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며, 저는 이 의무감을 제 아내에게 맡겨 버리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아빠보다 높은 의무감과 교육열을 가진 엄마 덕분에 첫째는 계속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점점 흥미를 느끼고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적응하는 데 다른 애들에 비해 오래 걸리는 첫째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흥미를 갖도록 이끌어 주신 열정적이신 선생님들이 지난 몇 년 동안 가르쳐 주셔서 뒤처지지 않고 꾸준히 실력이 향상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1년마다 하던 “꿈꾸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국 노래 부르기”를 참관해 보고, 행사를 위해 준비하신 선생님들과 애들의 퍼포먼스에 대해 가족들과 감상을 교환하면서 저의 선택이 의심할 여지 없이 옳았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초쯤으로 기억됩니다. 입학할 때와 비교해서 실력이 월등히 늘어난 첫째의 학교 숙제를 이제 아내가 도와주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교육의 짐에 해방되어 있던 제가 어쩔 수 없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도와주던 숙제를 제가 도와 주기 시작한 어느 날 금요일 오후에 어색해하던 첫째의 눈빛과 함께 “아빠가 이것 알어?” 라고 의심스럽게 물어보던 태도를 기억합니다. 가족 중에 유일한 “고급 레벨 한국어 구사자” 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무관심으로 인해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해 애들에게 미안해지더군요.

그때의 죄책감이 제가 애들의 숙제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애들의 한국어 실력이 제가 기대하는 레벨보다 많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한글뿐 아니라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세종대왕, 김연아, 평창 올림픽 등 제가 특별히 준비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든 것들을 애들이 배우고 접할 수 있다는 것에 부모로서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5년 전에 한 선택에 대해 후회가 없으며, 가능하면 애들이 오랫동안 학교를 다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제 토요일 오전의 한국학교 시간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우리 가족들에게 인식되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