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을 내려놓고 학교 문을 두드려서
변혜경 교사
그리운 친구에게
친구야. *더위가 한창인 이곳은 요즘 여기저기 이름 모를 나무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신호탄을 쏘듯 꽃을 피우고 있어. 얼마 전 이야기 끝에 한국은 많이 춥다고 해서 너에게 감기 조심하라는 말을 하기는 했으나 사실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어. 떠나온 세월만큼이나 그곳의 계절이 실감 나지도 않을 뿐더러 이곳은 더워서 늘어지는 중인데 그곳은 추워서 오그라들 지경이라니 생경하고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
몇 해를 뜸하다가 얼마 전 서로 통화하면서 너는 내가 한국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집에서 살림만 하는 줄로 알았는지) 학교 학생 수에 놀라고 또 우리 반 학생들 수준에 많이 놀랐지. 자랑도 아니었고 더구나 너를 놀라게 할 만한 얘기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돌이켜보니 네가 이곳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그래. 사실 네 생각보다 정말 많은 아이들이 이곳에서도 모국에 관심을 갖고 한국어를 배우려고 열심이란다. 늦잠을 자거나 조금은 게으르고 싶고 게임도 했으면 좋겠을 토요일을 내려놓고 한국어를 배우러 매주 학교 문을 두드리고 있어.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아이들과 대화를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 특히 자녀의 사춘기 때 서로 간의 불통을 우려하여 – 자녀들이 한국어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계시지. 또 고국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소통의 가교가 되기 위한 방편으로도 한국어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셔. 그래서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학교를 찾아오시곤 해.
그런데 내가 맡은 상급반 아이들은 나름의 열정을 가지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공부를 하러 온다면 믿어지겠니?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어. 또 다른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다는 것을. 그리고 그 날개가 자신의 꿈을 향해 더 높이 비상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을 말이지. 게다가 “내가 쓰고 있는 언어의 한계가 내가 알고 있는 세계의 한계”라는 한 언어철학의 대가였던 이의 말처럼 새로운 언어는 곧 미지의 신세계를 경험하는 통로가 된다는 것도 알아.
여섯 해에 걸쳐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가르친다고 하였지만 실상은 더 많이 배웠어. 학교까지 1시간이 훌쩍 넘게 걸리는 거리를 개의치 않고 등교하는 아이들, 올해로 11학년(한국의 고2)이 되지만 학교에 계속 출석하여 배움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아이, 좀 더 일찍 와서 공부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며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배움을 대하는 태도,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감동하며 배웠단다.
또 어릴 적 겨우 한글 떼고 이곳으로 이민 왔던 아이가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서 최고 등급인 6등급을 받는 것을 보며, 호주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 가서도 제 학년 수업 거뜬히 따라갈 수준인 아이들을 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교사로서의 보람과 자부심을 갖게 되었지.
어느 날이던가 남편이 집 앞마당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뽑겠다 하여 화단을 정리하며 뒤집은 적이 있어. 나란히 서서 제법 예쁜 꽃을 피우던 달리아 무리가 꽃을 거둔 후였는데 그 달리아가 사라지고 땅이 설핏설핏 맨얼굴을 드러내고 있었어. 달리아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된 그게 어찌나 서운하던지. 실망한 내게 남편이 뿌리가 살아 있을 테니 좀 기다려보라고 했지.
반신반의하며 지내던 계절이 두어 번 자리를 옮긴 어느 날이었어. 우연히 창밖을 보다가 ‘나 여기 있어요.’ 하며 소리치듯 꽃을 피워 낸 달리아를 발견하게 되었지. 난 생각지도 못한 해후에 하마터면 환호성을 지를 뻔했어. 정말 놀랍고 기특해서 그 꽃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우리 아이들 생각이 났어. 아, 뿌리가 살아 있으면 되는구나, 기다리면 되는구나, 정해진 시간까지 지켜봐야 하는구나, 그러다 보면 꽃을 보는구나, 열매를 얻는구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지금 당장 땅 위로 보이지 않는 결실을 꿈꾸며 지켜봐야 하는 작업인 것을 새삼 깨닫게 된 순간이었어.
그래, 뿌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희망이 살아 있다는 것. 적어도 뿌리가 살아 있다면 기다리자, 기다리자, 서두르지 말자. 그래서 나는 아직 꽃망울이 맺히지 않아 보이는 몇 아이들에 대한 조바심을 거두고 그들의 뿌리를 기억하며 기쁨으로 가르치고 있단다.
우리 학교에서 해마다 열리는 한국문화체험행사를 통해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 이것이 또 그들에게 잊히지 않는 감동과 추억이 되는 것 같아. 지난해 우리 반은 독도에 대해 배운 후 ‘독도는 우리 땅’ 노래를 외워 부르며 독도 영유권 문제를 함께 나눠보기도 하고 산적이나 궁중 떡볶이 등 한국 음식을 만들며 문화를 체험하기도 했어. 또 아이들은 세종대왕의 업적과 함께 한글의 창제 원리도 배우며 말 표현 하나라도 신중하게 또 바르게 쓰려고 노력하게 되었지.
얼마 전 세종대왕(우리 반 이름이기도 해)을 가지고 사행시 쓰기를 했는데 우리 반의 한 아이가 쓴 글이야.
세상에 태어나 우리나라 최초로 한글을 만드신
종이에 하루가 멀다 하고 수없이 글자를 쓰고 또 쓰신
대한민국 역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왕이시여! 바로 그분이 세종대왕이다.
토요일을 접었던 지난 시간 동안 우리 아이들은 한글이라는 언어를 통로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예절을 익히며 모국과 한층 가까워졌어. 이곳에서 한국은 더 이상 지구본에서나 볼 수 있는 머나먼 나라, 부모님만의 나라가 아니야. 게다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확산된 미디어의 보급이 한몫을 더해 한국은 이제 더불어 숨쉬는, 손을 뻗으면 곧 닿을 듯 생생하게 느껴지는 나라가 되었지.
한국과 호주, 계절은 반대로 흐르니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호주 속의 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우며 자아를 찾아가는 작업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알게 하고 싶어. 그게 내 소망이자 내가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야. 그리고 그 일에 변함없는 동역자로 마음 함께 모으고 애쓰시는 부모님들과 교장 선생님, 교사들께 깊은 감사가 있어. 여전히 당면한 여러 과제가 남아 있지만 이곳의 아이들이 한국의 뿌리를 잘 찾아가며 꽃피우고 열매 맺는 일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멀리서 박수하며 응원해 주길 바라.
(*이 글은 더위가 한창인 2019년 1월에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