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자녀의 한국어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선물 상자를 열어 보는 마음처럼

김여라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1월부터 기록해 놓았던 제 다이어리를 한번 훑어봅니다. 많은 계획들이 있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여행 가기’와 같은 계획들은 거의 해보지 못한 듯합니다. 아마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올 해는 모두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이어리를 보면서 발견한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기도 했지만 제가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그리고 계획할 생각도 못했던 새로운 경험도 많이 해 봤다는 것이죠. 모든 것을 새로 뒤집어 놓은 것 같은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큰 변화 중 하나는 바로 ‘온라인 수업’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시도한 것이었지요.

코로나바이러스가 호주에서도 점점 강성해지자 불안감도 커지고 있었던 3월 즈음이었습니다. 학교 오프라인 수업에 대한 위험과 불안감이 커지면서 저는 교사이자 세 아이의 학부모로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미래학자가 예견하는 코로나 이후의 상황에 대한 강의를 틈틈이 들으며 앞으로 바뀔 새로운 교육 방향을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와중 교장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미리 계획하시고 준비하시는 교장선생님께서는 앞으로 우리 학교도 비대면 수업을 위해 온라인 수업을 준비해 두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지요.

하지만 저는 사실 두렵기도 했고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하는 것이 정말 낯선 모험을 떠나는 것같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매일 걷는 익숙하고 잘 다져진 편한 산책길에서 벗어나 험하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 전과 같은 떨림과 긴장이라고 할까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도 같은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께서는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한글교육이 온라인으로 꾸준히 이어지도록 수업을 해 보자는 강한 의지를 보이셨지요. 혼자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힘들겠지만 성실한 선생님들과 함께 간다고 생각하니 저는 점점 긍정적으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건물을 세우기 전 터를 닦는 마음으로 온라인 수업을 어떻게 할지 계획을 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우선 온라인 수업을 하려면 고려할 것이 많았습니다. 각 가정의 인터넷 상황과 속도도 다르고 무엇보다 우리 학교는 한 가정에 두세 명의 자녀가 등록을 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시간 수업을 하면 각 반의 수업 시간이 겹치게 됩니다. 그러면 가정에서 지도하실 학부모님도 힘드실 것 같았습니다. 그 외 여러 상황을 고려한 후 실시간 수업보다는 사전 녹화 수업의 장점을 선택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저녁마다 시간을 내어 줌(zoom) 회의로 모여 OBS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실행해 보면서 온라인 수업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다 보니 첫 결과물인 ‘온라인 수업 시범 동영상’이 나왔고 텀2 첫째 주부터는 온라인 수업을 무사히 잘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수업은 사실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매우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갑니다. 50분 정도의 수업을 녹화한다고 하면 그것을 위해 준비하는 노력은 두세 배가 되지요. 아니, 더 많이 든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생각보다 녹화가 잘 안 되고 실수도 많이 해서 힘들 때가 많았지만 서로를 격려하고 애쓰며 열심히 흘린 선생님들의 노력과 땀방울은 결국 결실을 맺었습니다. 처음에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일들이 함께 힘을 모으니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저희가 더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과 자녀의 한국어 공부를 위해 응원해 주신 학부모님들이 계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올해는 모두 힘들게 공부한 시간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성취감과 보람으로 가득 찹니다.

가르치는 자리에 있다 보면 교육은 농사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진 않아도 좋은 밭에 성실한 농부가 씨앗을 심고 가꾸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지요. 호주한국학교도 잘 갖춰진 튼튼한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성실하신 선생님들이 관심을 주고 좋은 열매를 맺으려 애를 써 왔기 때문에 좋은 배움의 밭이 된 것 같습니다. 온라인 수업으로 방향을 바꾸면 다만 밭이 ‘온라인 밭’이 되고 오프라인 수업이 되면 ‘오프라인 밭’으로 바뀔 뿐이지 우리 선생님들이 좋은 밭을 만들기 위해 들이는 노력과 정성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도 저는 제가 있는 밭에서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결국 여기서 태어난 우리 다음 세대가 당당하게 자라도록 돕는 씨앗을 심는 것과 같을 테니까요.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계획이 취소되면서 휑할 것 같던 제 다이어리의 하루하루가 오히려 빽빽하게 기록한 흔적으로 꽉 차 있습니다. 그 기록들을 보니 이전에 해 보지 않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계획하고 성취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마음이 참 뿌듯합니다. 자, 이제 여러분의 다이어리를 열어 보실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2020년 다이어리에 무엇을 적어 놓으셨나요? 아마 좋은 일보다는 힘든 일이 많은 한 해였겠지요. 그렇지만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며 선물 상자를 열어 보듯이, 우리도 설레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2021년’이라는 시간의 선물 상자를 열어 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