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자녀의 한국어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한국어 학습, 나의 정체성을 찾는 것

이지예

혼자 유럽으로 긴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다. 내가 평소에 살고 있던 곳을 벗어나 세계를 경험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무엇보다 지난 삶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확인하고 싶었다.

배낭여행 중 스위스에 있는 한 숙소에 머물면서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미교포 2세를 만났다. 나와 같은 한국인의 모습이지만 어눌한 한국말을 쓰는 여대생이었다.

그 친구는 “거울을 보면 분명히 동양인인데, 속은 미국인으로서 자라왔다. 점차 성인이 돼가면서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껴 많이 괴로웠다”며 나에게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그 친구는 유럽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머무르며 자신을 찾는 좋은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인으로서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이방인으로 느껴지는 삶이 어떠했을지 사실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힘들어하는 친구가 한국에서 정체성의 답을 찾기를 응원했었다.

아마도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 2세에게 정체성 확립과 역사의식에 대한 교육은 교육자와 학부모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정체성 확립을 이야기함에 있어 언어가 갖는 힘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곧 그 나라와 교류하는 것이며, 그 나라의 문화를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얼과 문화와 관습이 녹아든 역사의 흔적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이해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중요한 교육일 것이다.

매주 토요일 호주한국학교에서 친구들에게 한국 이름 석 자로 불리는 것이 정체성의 시작점일 수도 있다.

호주한국학교에서 한국 친구를 사귀고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동기 부여가 되었을 것이고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이 되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호주한국학교는 한국어를 읽고, 듣고, 쓰고, 문법을 배우는 학습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행사를 통해 아이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한국 역사를 배우는 등의 커리큘럼이 마련되어 있다.

아이들은 한복을 입고 한국의 전통놀이를 즐기고 전래동요를 부르며 한국말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자연스레 한국어와 문화를 습득한다.

주 중에 학생들이 숙제를 통해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자녀의 과제를 확인해 주는 부모님의 역할 역시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 향상에 큰 도움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갑작스러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현장 수업을 함께 할 수 없었던 순간에도 교사와 학교의 노력과 배움에 열정이 있는 학생들과 함께 온라인 플랫폼으로 한국어 학습을 꾸준히 이어 나갔다.

한글만 가르치는 ‘한글학교’가 아닌 한국 역사 및 문화 교육을 통해 정체성 교육을 할 수 있는 ‘한국학교’ 교사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300개 이상의 언어가 존재하는 다문화 국가 호주에서 자신이 가진 또 다른 배경을 이해하고 언어로도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이중언어 재능을 가진 글로벌 역량을 갖춘 인재로서 자라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호주한국학교 교사로 일하는 동안 한국어 실력이 나날이 향상되는 아이들을 보며,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많은 질문을 던지는 아이들을 대하면서 나의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 뿌리를 기억하는 마음을 되새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뿌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나에 대한 믿음이자 언제든지 자신에게 위안이 되고 듬직한 버팀목 같은 역할을 한다.
올바른 한국어 학습과 문화 학습을 통한 정체성 확립은 나의 뿌리를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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