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여기 학교에 살아요?”
문혜영
호주한국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나는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한국인 부모님과 함께 자라 한국에 대한 백그라운드가 있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호주인 부모님과 함께 자라 한국에 대한 백그라운드가 전혀 없음에도 한국 문화를 미디어로 접하며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더 나아가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도 있다. 다시 말해, 부모님이 한글학교에 등록해서 ‘한국어를 왜 배워야 해?’ 하는 의구심이 있음에도 타의적으로 온 학생과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자의적으로 온 학생들이 있다.
동기가 어떻든지 나는 호주한국학교에 온 모든 학생들이 즐겁게 한국어를 배웠으면 한다. 특히 학교에 자신의 의지로 오지 않은 학생들도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흥미롭다.’거나 ‘호주한국학교는 재미있다.’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한다.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은 학생들의 학업 성취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기존에 한국어 학습에 흥미를 가진 학생들이 그 흥미를 잃지 않고 배움에 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호주한국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제일 보람을 느꼈을 때는 학부모님의 피드백을 들었을 때이다. “우리 아이가 TV를 보다가 한글 낱말을 보고 읽었어요.”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학생은 6살이었고, 아직 받침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집에서 받침이 있는 단어를 읽었기 때문이다. 호주한국학교 교육시스템의 정말 좋은 점은 글자의 소릿값을 기초반에서 탄탄히 배운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은 배운 글자의 소릿값을 통해 받침이 있는 단어도 소리를 유추하여 읽었던 것이다.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계세요’ 왜 달라요?”
수업이 끝나고 학부모님과 내가 인사하는 것을 보고 궁금증을 느낀 한 학생이 이렇게 질문을 했다. 나는 학생에게 ‘안녕히 계세요.’는 머무는 사람이 떠나는 사람에게 하는 인사이고, ‘안녕히 계세요.’는 떠나는 사람이 머무는 사람에게 하는 인사라고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학생이 이렇게 또 재미있는 질문을 한다. “선생님은 여기 학교에 살아요?”
이렇듯 학생들이 직.간접적으로 한국어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흥미를 가지고 의문점을 갖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의문점을 바로 해결해주는 선생님이 있다는 것이 한글학교의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호주에 살며 나는 다양한 유형의 한국인 2세들을 만난다. 그들의 공통점은 한국인인 나와 대화할 때도 한국말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외국 친구들이 서투른 한국말로 “오, 안녕하세요!” 하며 한국어 실력을 자랑하곤 하는데 말이다. 처음에는 영어가 편하니까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들이 한국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호주한국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전까지 나는 ‘그래, 호주에 살며 한국어를 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면 배우지 않았을 수도 있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 즈음에 나는 호주한국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다른 한글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님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내가 호주한국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들은 학부모님께서 이렇게 얘기하셨다. “좋은 일 하시네요.” 그러고 보면 호주한국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들을 때마다 뿌듯하고 기분이 좋지만 동시에 어깨가 무거워지곤 한다.
그 학부모님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 호주로 이민 와서 정착한 분들은 자녀의 한국어 교육에 큰 중점을 두지 않았다는 것(나는 자연스럽게 내 주변의 2세들을 떠올리며 공감했다.), 그렇지만 요즘의 한국인 부모들은 생각이 달라서 자녀의 한국어 교육을 선택이라고 생각지 않고 필수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주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다 구사할 수 있는 한국인의 이점이 크다는 것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한국어 교육에 대한 나름의 교육관이 서기 시작했다. 이제는 학생들이 한국어 학습과 더불어 한국문화 교육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하고 더 나아가 이중언어 재능을 가진 글로벌 역량을 갖춘 인재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오늘도 토요일 아침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고 일어나 학교로 오는 학생들이 ‘역시 호주한국학교는 재밌어.’ ‘우리 선생님이 최고야.’라고 생각하며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