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자녀의 한국어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가도 고민, 안 가면 더 고민

마선희

얼마 전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을 볼 기회가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리나에 위치한 한인마트를, 일정 기간 운영하면서 겪는 일상을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출연자들이 교민들과 친근하게 방송을 하는 모습을 보니 시드니에서도 한번 방송을 시도하였으면 하는 기대를 해보았다. 그리고 이 방송을 시청하면서 특히 나의 관심을 끌었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웠어요”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한인마트를 방문한 많은 아이들과 출연자와의 대화에서,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에 놀란 출연자가 아이들에게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아이들은 조부모와 부모님들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마리나에서 운영하고 있는v‘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출연자와 시청자 모두 그 아이들이 기특하고 모국어를 잊지 않게 해주신 부모님과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호주 한인 교민 가정이면 누구나 한 번씩은 해봤을 고민…, 우리 아이를 한국학교에 꼭 보내야 할까? 한인 교민 가정의 부모님들은 한국학교에 대한 특수한 사정 때문에 딜레마를 겪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학교(한글학교 포함)는 토요일에 수업을 하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가기 싫어한다’라는 점도 이해한다. 일주일에 5일은 정규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일요일은 종교활동 등 각종 행사에 참여하기 때문에 오로지 자유가 있는 하루, 토요일에 한국학교에서 공부를 하기에는 많은 고민과 선택을 필요로 한다. 또한 아이들의 학년이 올라가면 당장 학교 수업 양도 많아지고 운동이나 행사 등 여러 활동으로 스케줄이 타이트하다 보니, 필수가 아닌 한국어 학습이 등한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한국어 구사 능력이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아쉬움이 있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 우리 호주한국학교의 장점은 한국 문화와 역사 수업을 통해 한국인의로서의 자긍심과 자기 정체성을 일깨울 수 있으며, 체계적이고 수준에 맞는 한국어 수업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또래와 교류하면서 자부심과 자극도 받게 된다. 또한 각종 한인 재단이나 기관에서 주관 및 주최하는 경진대회에 참가할 기회가 주어지고 있으며,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통해 자신의 한국어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이에 참가한 학생들은 자부심과 성취감을 동시에 느끼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토요일에만 등교해야 하는 한계성을 부인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호주한국학교는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 교장선생님과 교사들은 토요일을 내려놓고 매주 방과 후, 학습 회의와 수업에 관한 피드백, 최신 학습 자료 습득 및 각종 교사 연수를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좀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며, 유익하고 재미있는 수업을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한국문화체험행사’를 위해 나무판자를 직접 자르고 다듬어서 비석치기 교구재를 만드시는 교장선생님, 아이들에게 많은 체험을 해주기 위해 음악 교구를 대여해 오시는 선생님, 완성도 높은 행사를 위해 필요한 소품을 직접 만드시는 선생님들과 매주 새로운 액티비티 수업를 위해 고민하고 준비하시는 선생님들이 계신다.

우리 진달래반은 호주한국학교에서 두 번째로 레벨이 높은 반이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공부시켜 최상위 반으로 레벨 업 시키는 것이 목표인데, 기본적으로 2~3년 정도 수업을 하다 보면 최상위 반에서도 힘들지 않게 공부할 수 있다. 읽기가 잘 안되던 아이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많은 본문을 읽어가는 모습과, 글쓰기를 유난히 어려워하던 아이가 한 주에 한 줄씩 쓰는 양을 늘려가며 일기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힘들지만 하려고 하는 그 모습이 너무 대견스러웠다. 또한 아이들을 아침마다 등교시키시고, 항상 격려와 도움을 아끼지 않으시는 우리 부모님들께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진달래반은 올해 유난히 7~8학년 여학생이 많았다. 한창 예민하고 남을 의식하는 사춘기 아이들에게 ‘한국문화체험행사’ 준비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문화체험 학습으로 ‘비석치기’, 알까기’와 시나리오를 외워서 하는 ‘역할극’, 춤이 주가 되는 ‘독도 플래시몹’과 ‘난타’수업을 할 때, 처음에는 쑥스러워서 구석에 몰려있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잘하려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 힘들었던 순간이 사라지며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게 된다. 모든 아이들이 다 내 마음처럼 따라주지는 않는다. 개성이 강한 아이, 유난히 소심한 아이가 있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시간의 제약이라는 변명 아닌 변명으로 모두 맞출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천천히, 애정을 가지고 다가가다 보면 어느덧 교실 안에서 함께 동화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하는 ‘칭찬’일 것이다. 아이들 또한 친구들에게 칭찬을 하는 훈련이 필요한데, 칭찬은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졌을 때 보이기 때문에 진심 어린 칭찬은 상대가 존중받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며 관계가 돈독해지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국학교 교사로서 가끔 한국에 있는 과거 함께 하였던 동료 교사들과 통화를 하면서 호주한국학교의 교육 방법과 역사, 문화수업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눈다. 그 지인들은 “현재 한국에 있는 학생들보다도 호주한국학교 학생들이 더 많은 한국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호주한국학교 졸업생들이 한국 역사에 관해서 더 해박한 지식과 정확한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라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하지만 얼마 전 만난 한인 2세는 학창 시절 한국학교(한글학교)를 너무 다니기 싫어서 중도 자퇴하였는데, 30대인 지금 한국어를 잘 읽지도 못하고, 어눌하게 구사하는 점이 부끄럽고 후회된다고 하였다. 이는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반면교사로 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무튼 한국학교는 가도 고민 안 가면 더 고민이 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문제이자 숙제일 것이다. 하지만 고민을 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건,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 환경을 몸으로 습득하는 것인데, 그 환경이 체득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어를 습득해야만 하는 우리 교민 2세 아이들에게는 언어 습득의 주입도 중요하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도 가치 있는 일 중의 하나라고 강조하고 싶다.

현재 한인 부모님은 당장의 2세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향후 3세대, 4세대를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3세대, 4세대들의 부모가 될 2세대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들의 자녀가 모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싶어 할 때 제대로 알려 주지 못한다면 아쉬움이 클 것이다. 따라서 1세대와 2세대 모두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한국인의 언어와 역사 그리고 문화를 받아들이고 전수하는 것이 소위 교육 백년대계를 위한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의 자녀들이 이곳 호주에서 모국에 대한 정체성을 깨닫는 동시에 개방적인 문화 수용 태도를 가지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