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자녀의 한국어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모든 한국 음식은 다 “고양이맛”

박지은 학부모

 

호주에서 산 지도 이제 27년째이다. 세월이 흘러 이렇게 한국학교에 아이를 보낼 만큼 나이가 들어 학부모라고 불릴 때는 가끔 나 자신도 깜짝 놀란다.

호주에 처음 왔을 때는 영어를 어떻게든 빨리 배워보려고 한국어를 일부러 안 하려고도 했고 호주 친구나 영어로만 의사소통이 되는 외국 친구들이랑 사귀면서 고군분투한 시절이 생각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대학원까지 무사히 마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쯤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던 호주 친구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영어로만 대화하고 생활하는 것에 익숙하여 아무 생각없이 지냈지만, 엄마가 된다고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아이에게 꼭 자신이 호주인이기도 하지만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자라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호주에서 한국인 부모와 함께 살지만 한국어 교육을 소홀히하여 부모 자식 간의 대화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체성 위기를 겪는 청소년들을 여럿 개인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계획을 남편에게 말하자 자기도 ‘가나다라’만 알고 소리 나는 대로 읽을 수 있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어를 공부하겠다고 선언을 하는 것이다. 물론 남편은 안타깝게도 아직 그 수준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뜻 모르고 한국어 무조건 빨리 읽기는 호주에서 아마 일인자일 거다!

아이가 태어나고 커가면서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할 수 있게 키우는 것이 정말 생각보다 너무 힘든 일이라는 것을 매일 실감하게 되었다.

나도 하루 종일 영어로만 말하고 집에 와서는 남편과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또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하니 두 번씩 똑같은 말을 영어로 한국어로 반복하기란 인내심을 상당히 요구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어 교육은 처음 마음과는 다르게 흐지부지하게 되었었다.

그러던 중 아이가 유치원을 들어갈 때쯤 놀이터에서 또래 아이들과 우리 아이가 대화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날 처음 만난 호주 아이가 던진 “너는 어디서 왔니?”라는 질문에 한시의 주저함도 없이 “나는 100% 호주 사람이고 100% 한국 사람이야!”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아이를 보고 더 한국어와 한국문화 교육의 절실함을 느꼈다.

그날 이후로 정신이 바짝 든 나는 당시 잠시 애들레이드 거주 중이었는데 그곳 한국학교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그야말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매일 조금씩이나마 한국어 공부를 함께 하고 한국어 어린이 프로그램을 같이 찾아보며 아이와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토요일 아침이면 늦잠도 자고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겠지만, 정말 아주 가끔 가기 싫다고 투정부리는 것 말고는 여태 꾸준히 한국학교를 다녀준 아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그렇게 노력해서 이제는 꽤나 수준급으로 한국어를 구사하고 할머니 할아버지와도 제법 막히지 않고 한국어로 대화하는 아들을 보면 눈물이 나게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지만 아직 내가 말하는 한국어를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 음식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남편과 아들을 위해 자주 한국 음식을 해서 먹는데, 어느 날 “와, 고향의 맛이네! 맛있다!”라고 말하는 내게 아이가 기겁을 하며 물어본다.

“엄마, 어느 고양이 넣고 만들었어?” 그러고는 키우고 있는 고양이를 넣고 끓인 국이냐고 물어 보는 통에 온가족이 한바탕 웃었다. 그 후로는 우리 집에서는 식탁에 올라가는 모든 한국 음식은 다 “고양이 맛”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한국어로 말하고 웃고 하는 것이 일상이 된 지금, 뒤돌아보다 보면 아이에게 한국어 가르친다고 힘들었던 날도 많았지만 아이가 자신의 뿌리를 알고 단단하게 자라고 있는 것 같아 참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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